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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전의 지역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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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인천에서 『인천경성격주상보(仁川京城隔週商報)』 등 일인들이 무역을 빙자한 우리나라 경제침략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상업지를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발행하였으나 이것을 경기지방의 지역신문으로 볼 수는 없으며, 1945년 10월 7일 인천에서 최상철이 발행한 『대중일보』가 경인지역 신문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재정적 어려움과 해방정국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좌경화 색채가 강했던 『대중일보』는 인천시청 적산과장에 대한 허위보도로 기자 등 직원 40여 명이 검속되고 미 군정청 재판에서 벌금형을 받는 등 우리나라 첫 필화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 후 『대중일보』는 철도파업에 동조하여 우익 청년들의 신문사 습격을 받는 등 시련기를 거치면서 6·25전쟁으로 휴간되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속간하였다. 경인지역에는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을 거치면서 많은 신문이 창간되었다 폐간되기를 거듭하였다. 1990년 이전에 발행되어 여주지역에 보급되거나 주재기자를 통한 지역언론 활동을 한 경기도와 인천지방 주요 신문의 연혁은 다음과 같다.

① 경기매일신문(京畿每日新聞)

1945년 10월 7일 인천시 동구 중앙동에서 『대중일보』로 창간되었다. 1950년 『인천신보』로, 1957년 7월 『기호일보』, 1960년 7월 『경기매일신문』으로 다시 이름을 고쳤다. 그 후 1973년 8월 31일 지령 제9918호를 끝으로 폐간하고 『경기신문』에 흡수되었다가 1982년에 『경인일보』로 개제되었다. 여주에는 1960대 중반부터 지국이 설치되면서 김종기가 주재기자로 2차에 걸친 발령을 받고 1973년 8월 31일 3개 신문사가 통합되기까지 지역언론 활동을 하였다.

② 연합신문(聯合新聞)

1949년 1월 22일 양우정에 의하여 창간되었다가 6·25전쟁으로 한때 휴간하였으며, 1951년 1월 임시수도 부산에서 속간하였다. 1952년 4월 20일에는 자매통신으로 ‘동양통신(東洋通信)’을 창설하였다. 1953년 8월 이른바 국제간첩단 사건이 발생하여 주필 정국은이 재일 조총련 계통의 국제공산당원임이 드러나 이듬해 사형이 집행되고 사장 양우정도 1953년 10월 체포되어 7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1954년 부사장이었던 김성곤이 판권을 인수하여 발행하다가 1960년 7월 11일 지령 제4024호부터 『서울일일신문』으로 개제 발행하였으며, 1962년 1월 1일 자진 폐간하였다.

③ 경인일보(京仁日報)

수원에서 발행되던 『연합신문』과 인천에서 발간되던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등 세 신문을 통합하여 1973년 9월 1일 『경기신문』으로 창간되었다.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1982년 3월 1일 『경인일보』로 개칭하였으며, 여주지역 언론활동은 당시 『연합신문』 주재기자였던 장천용이 승계하였다. 1989년 신축사옥으로 이전했고, 1997년 7월 1일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했다.

④ 경기일보(京畿日報)

1966년 2월 22일 교육계 출신 황광수가 인천 신포동 국제빌딩에서 창간하여 경기도 시·군에 지국을 설치하면서 보급망을 넓혔다. 1967년 『경기월간』을, 1969년 『경기교육』을 발행하였으며, 1971년에는 『소년경기』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당시 여주에서는 진유복이 지국장을 겸한 주재기자로 활동하였다. 1973년 언론 통합 시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연합신문』이 통합되어 1973년 9월 1일부터 홍대건을 발행인으로 새로운 제호 『경기신문』이 발행되었다. 당시 장천용이 여주 주재기자로 활동하였다. 1981년 7월 1일 인천시가 직할시로 승격되자 1982년 3월 1일 제호를 『경인일보』로 바꾸어 사실상 『경기일보』는 사라졌다. 그러나 1987년 10월 다시 경기일보 법인을 설립하고 1988년 8월 17일 타블로이드 배판 12면으로 창간호를 발행하게 되어 경기도의 종합 일간지가 되었다. 1989년 3월 『포토경기』를 창간하고, 1994년 경기개발연구원을 개원했으며,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하였다. 1999년 디지털 경기일보 인터넷 전자신문 서비스를 실시하였다. 여주에서는 1987년 새로 창간 시 이보택이 주재기자로 활동하였다.

⑤ 기호일보(畿湖日報)

1988년 7월 20일 『기호신문』으로 창간된 지방 종합일간신문이다. 1989년 12월 8일 『기호일보』로 변경했으며 조간신문이다. 창간 초기부터 여주에 지국을 설치하여 주재기자를 파견하였는데, 초기에 고영옥이 여주 주재기자로 발령을 받아 활동을 해왔다.

⑥ 인천일보(仁川日報)

현존하고 있는 『인천일보』는 1973년 9월 1일 『경기연합신문』, 『구 인천신문』 등이 『경기신문』으로 통폐합되었다가 인천과 수원의 분리작업이 시작되면서 1988년 7월 15일 『인천신문』으로 창간된 지방 종합일간신문이다. 1990년 『인천일보』로 제호를 변경하였으며 1994년 인천시 중구 항동 4가 18-1로 사옥을 신축 이전하였다. 1988년 7월 여주지역에 지국을 설치하고 주재기자로 최진식을 발령하여 지역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⑦ 경인매일(京仁每日)

1989년 12월 15일 타블로이드 배판 20면으로 창간한 전국종합 일간신문이다. 주당 발행 면수는 72면이고, 전국에서 93%가 판매되고 있으며, 국내 보급망으로는 7개 분실, 32개 지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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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