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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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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헌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의경(儀卿), 호는 신암(愼庵)이고, 판서 조윤대(曺允大)의 아들이다. 1805년(순조 5)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史官)이 되고 이어 정언·이조참의·대사성·승지를 역임하고, 1823년(순조 23) 한성부판윤에 취임했다. 이어서 형조와 공조의 판서(判書) 등을 지내고, 1825년(순조 25) 전라도관찰사 재직 때 둔전(屯田)의 세제(稅制) 문제로 왕을 기만했다는 탄핵을 받아 진도(珍島)에 유배되었으며, 1828년(순조 28) 봄에 풀려나 여주 보통리의 시골집에 돌아왔다. 1833년(순조 33) 형조판서에 임명되고 동지사로 청에 다녀온 뒤 헌종 때 공조판서·대사헌·이조판서를 역임했다. 묘는 흥천면 율극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순조실록』, 『헌종실록』, 『국조인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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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